1.
단군의 유적지
2.
민속의식


단군의 유적지
 
   (1) 민족의 성지 백두산

  가. 위치
      백두산은 함경남북도와 중국의 동북 지방을 국경으로 하여 우리나라 최고봉의 성산이다. 42도 7분 동경 1백28도 5분에 위치 해 있으며 외신은 백두산의 높이가 2,749.2m로 보도했으나 중국에서 최근에 발행된 지도에는 2,749.6m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가장 정확한 것으로 본다.

  나. 생성 (生成)
      천지의 나이는 약 1백만 살로 보고 있으며 천지는 백두산의 화산활동이 멎은 후 생성되어 그 후에도 몇 차례의 화산 폭발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천지 밑바닥에 있는 여러 개의 분화구가 발견됨으로서 측정된 것이다.

  다. 모양
      천지의 측면도는 밑둥이 약간 경사진 물컵 모양이며 천지 기슭에서 40 - 50m만 들어가도 평균 수심이 200m가 넘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최심부(最深部)가 312.7m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의 면적 측심 방법에 의해 10만여 곳의 깊이를 잰 결과 최대 수심(水深)은 384m로 밝혀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에 위치한 티티카 호는 최대 수심이 304m이며 소련의 레닌그라드경에 있는 라도는 최대 수심이 225m로 밝혀졌다. 따라서 백두산 천지는 세계 제1의 깊은 산중 호수이다.
    넓이 21.41㎢ 남북의 길이 4.85㎢
    동서의 길이 3.35㎢ 수심의 총 둘레 13.11㎢
    산 둘레는 약 80리에 이른다
    ( 조선일보에 실린 중국과 북한의 측정임 )

  라. 물의 양(量)과 질(質)
      백두산의 천지 안에는 19억 5천 5백만㎥(약 20억t)의 물이 항상 담겨 있으며 이 물의 구성은 빗물이 70%,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천연물이 30%이다. 천지 밑바닥에는 3개의 큰 샘이 감추어져 있고 이곳에서는 하루 3천㎥의 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물의 온도는 각 지역마다 수온이 다르며 온도가 높은 곳은 섭씨 70。 이상 뜨거운 온천수가 방출되고 있다.

천지의 물은 세계 어느 유명 약수보다 정갈하다.
일반적으로 식용(食用)으로 가능한 물의 경도가 8도 이하라고 하는데 최고의 약수라야 경도 4정도에 이른다. 천지의 물은 경도 2로서 그야말로 생명의 천수다. 이는 공해가 없는 천연 공기의 맑은 빗물이 부식층을 통과하여 완전히 여과되어 솟아오르는 천연수와 합쳐지기 때문이다.

근래 발행된 중국 지도에 의하면백두산 천지 수면의 약 3/5는 우리 것으로 2/5는 중국 측으로 분할되어 있어 가슴이 아플 뿐이다.

  마. 동식물의 서식상태
      조선일보에서 지난 50년전에 학술조단에 의해 발표된 생물학 취재팀의 통계로는 곤충(昆蟲) 2천여 점을 조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의 중앙 방송에 의하면 백두산은 산림 자원의 보고로서 산삼, 황기, 세신 등 백 여종의 약초와 고사리, 더덕, 버섯 등 110여 가지의 산나물, 그리고 그 향기가 백리에 미친다는 백리향, 노랑 만병초 등 향료 식물을 비롯해 약 65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산림 한계선은 2천m로서 천지를 위시한 산마루에는 초원 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이곳에는 눈 속에서도 꽃이 핀다는 만병초를 비롯 가솔 황산 참꽃 두메자운 콩버들 자주꽃바랑이 등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다. 7, 8월경에는 마치 주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화려하다. 이 고산지대 바로 아래에는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사시나무 등 침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조금 낮은 지대에는 활엽수가 무성하고 그 아래에는 떨기나무가 자라고 매년 수천 톤의 들깨를 수확 할 수 있는 3만여 정보에 달하는 야생 들깨 밭도 있다고 한다.

산림 속에는 호랑이, 표범, 곰, 이리, 늑대 멧돼지 사슴 사향노루 검은돈등 짐승류가 약 50종, 조류 약 140종 파충류 5종 양서류 6종 물고기류 10여 종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나비의 경우는 큰 모시범나비를 비롯 90여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바. 16봉의 산봉우리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16개의 산봉우리는 모두 해발 2,500m 이상인 거대하고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데 가장 높은 백두봉을 비롯하여 백운봉 관면봉 삼기봉 천황봉 지반봉 왕주봉 제운봉 와호봉 고준봉 자하봉 화개봉 철벽봉 용문봉 관일봉 금병봉 등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중 자하봉(2,618m) 고중봉 삼기봉 백두봉(2,749.6m) 고나련봉(2,525m) 와호봉(2,566m) 제운봉(2,543m)등 7봉은 우리나라 경내에 있고 나머지 9봉은 중국경내에 있다. 다행이도 16봉 가운데 최고봉인 백두봉은 우리 국경내에 속해 있다. 16봉 가운데 14봉이 중국경내에 있다고 보도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 백두산의 네 강
      거여록에 이르기를
"산은 모두 3층이며 높이가 이백 리에 가로는 천리나 된다. 그 꼭대기는 천지가 있으니 둘레가 80리이며 혹은 3, 40리라 한다. 이 천지가 흘러서 압록강이 되었고 북쪽으로 흘러서 송화강, 또는 혼돈강이 되었고 북동쪽으로 흘러서 소화, 또는 속평강이 되었고 동쪽으로 흘러서 두만강이 되었으니 대개 백두산은 북동쪽 여러산의 조상이다. 바라다보면 웅장하고 두텁고 넓고 커서 천리가 한 빛으로 푸르다.

홀로 그 꼭대기는 흰 항아리를 높은 도마 위에 엎어놓은 것과 같아서 이 때문에 이름을 백두라 했다. 고개 밑에는 한 주먹 흙이나 한 포기 풀도 없고 이따금 소나무와 삼나무가 있어서 힘센 바람에 시달려 모드 오그라지고 휘었다. 고개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가다가 잔잔히 흐르는 시내를 건너면 평평한 땅이 수 천리에 이어졌는데 나무가 있으나 또한 모두 웅장하여 ?
높이가 두어 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풍속에 박달나무라고 하는데 곧 단군이 하강한 곳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길림성의 민속학자 정길운씨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흐르는 강의 이름이 지금은 한자어로 되어 있으나 본래는 두만강, 또는 도문강이라 불리는데 천지 물이 산밑으로 삼십리나 도망가서 흐른다고 하여 "도망강"이라 이른데서 변음 한 것이고 압록강은 앞쪽으로 누비어 흐른다고 하여 "앞누비강"이라고 이른 것이 변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송화강은 송림(松林), 특히 소나무 숲 사이로 솔꽃 가루가 층을 이루어 겹겹으로 떠내려 가기 때문에 "솔꽃강"이라 이른 것을 한자어로 옮겨 적은 것이라 했다 한다 (진태하 교수 기록) 아무튼 이 네 강의 흐름은 인류의 새 장을 잉태하는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낳는 시원이 되었다.

  아. 백두산의 이름
      백두산은 동북쪽 여러 산의 우두머리이다. 백두산은 이름이 모두 여덟 개의 이름이 있어서 불함산 개마산 도태산 백산 백두산 태백산 장백산 가이미상견이라 한다. 예전과 지금의 번독(飜讀)이 달라서 그런 것이다.
- 강역고 -

[환웅과 단군과 화랑]에서는
옛날 배달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은 배달의 삼신산인 한밝산 하나를 두고 한문을 빌어 여러 가지 이름들로 적었는데 그것은 대략 54가지라 했다. 개마산 두산 박달산 삼신산 언조산 천신산 천등산 백두산 환산 태백산 장백산 ....등이다.
산이 높고 깊으므로 또한 간직된 온갓 신비와 웅장한 자태에 각 이름도 다양하게 불리워졌다고 본다. 근래에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으며 우리는 백두산으로 부르고 있다.
Top ↑

  자. 백두산의 역사
      옛 문헌에 실린 백두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삼성기
    천신의 명을 받들어 백산, 즉 백두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 오셨다. 자정여정(子井女井)을 천평에 뚫어 파고 정기를 청구에 그었고 천부인을 가지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고 세상을 이치로 다스리시어 되게 하시고 인간을 홍익인간 이화세계 하시었다. 도읍을 신시에 정하고 나라를 배달이라 일컬었다.

  2) 사마천 사기(史記)
    지금부터 2,100년 전에 동아의 동북녘 땅이 있는 말갈 나라는 옛날 숙신의 나라로서 큰 바다와 닿았었다. 이 나라의 남쪽에 한밝산이 있는데 이 산에는 새 짐승들과 풀 나무들이 모두 희다. 중국 사전에서 말하기를 한밝산에는 나무들이 울창하여 해를 볼 수 없고 해마다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큰 눈이 덮여 있고 산 위에는 흰 구름이 항상 있으므로 산 이름을 장백산이라 한다.

  3) 역대통감 사기 후한서 등
    아득한 옛날에 신선 활로가 신선 원시를 데리고 동해의 나라 신령스러운 터를 향해 가면서 조선인 숙신 나라에 있는 약수를 지나 봉래 땅에 이르렀다. 봉래산에는 금과 옥으로 꾸민 큰 궁전들이 많고 또 새 짐승들이 모두 희다. 염제 선농의 신하인 신선 적송자가 이르기를 봉래와 방장과 영주는 배달 나라인 발해에 있는 삼신산인데 이 산에는 물건들과 새 짐승들이 모두 희며 금은으로서 궁궐을 지어 둔 까닭에 멀리서 바라보면은 온 산이 바다같이 희다고 하였다.

  4) 삼한비기
    백두산의 우람한 큰산은 망망하고 넓은 대지 가운데 탄탄하고 평탄하게 자리하고 있어 가로가 천리에 이르며 높이가 2백리로 우뚝 솟아 그 웅장하고 위엄이 하늘을 찌를 듯 하며 높고 낮은 모양이 창자처럼 구불구불 감돌아 보이는 산세는 연연히 구비치는 파도처럼 아름답다. 실로 배달 천궁의 진산(眞山)이다. 신인께서 오르내리심은 실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그밖에 단기 고사에는 백두산이 밤새 울며 천지의 물이 창일(漲溢) 했다고 했고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방지 영변여지승람 조선사략 등에 백두산의 기록이 적혀 있다.

자. 백두산의 聖詩
    배달민족의 거대한 웅비와 찬란히 빛나던 문화유산을 신비로히 간직한 백두산은 배달민족의 기상이요, 겨레의 젖줄로 겨레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왔다. 그 성스러운 신비와 절경을 우리의 조상들은 시로 읊어 마음속에 담았다.

  1) 발해 고왕께서 삼일신고 예찬문에
    높고 높다 저 한밝 뫼여
    하늘 복판에 우뚝 솟았네
    안개구름 자욱함이여 일만 산악의 조종이로다
    한배검 한을에서 내려오시니
    거룩 할 사 배달의 대궐이시오
    나라를 세우고 교화를 펴사
    온 누리를 싸고 덮었네

  2) 심광세의 태백신가
    하늘이 덮어 기른 지 몇 해이며
    땅에 터 다진 곳 어디인가
    해와 달이 어느 때 그 막힌 것을 풀었으니
    신은 어느 시대에 움직였으며
    나무는 어느 때 뿌리가 생겼는가
    해와 달이 정기 쌓아 성인을 저 나무 밑에 내렸네
    해와 달이 함께 밝고 하늘과 땅이 함께 커서
    나면서부터 이미 상서롭고 신령스럽네....

  3) 대종경전의 성지 태백산
    상원 갑자 상달 초사흘 태백산에 서기 둘리니
    한검님이 인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 나셨다
    산마루는 눈이 쌓이어 어느 때나 깨끗 하도다
    저와 같이 우리 마음도 순결하게 가져 봅시다


(2) 마니산 (참성단)

가. 참성단

    마니산 참성단은 강화도 화도면 문산리에 있는 산으로 단군님께서 세 아드님으로 하여금 삼랑성을 쌓게 하시고 강화도 제일 높은 봉우리에 한얼님께 제사하는 제천단인 참성단을 쌓게 하시어 한얼 제사를 올리셨다. 마니산의 원 이름은 지극히 높고 신령한 산이라는 의미에서 [버리산]으로 부르던 것이 불교의 영향을 받게 되어 불교식 이름인 마니산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참성단에서 동쪽으로는 서울과 인천이 뚜렷이 보인다. 인천의 월미도와 서울의 남산과 삼각산의 연봉(連峰)을 확실히 볼 수 있고 북으로는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서북으로는 연백 평야가 한 가닥 허리띠 같이 보인다. 해주를 건너 구월산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솟아 보이기도 한다. 남쪽으로는 한눈에 들어오는 강화읍이 평화롭기만 하다. 한얼님께 제사하는 참성단은 층계를 중심으로 윗 층은 네모 모양으로 아래층은 둥근 모양으로 그 모습이 특이하다.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박달나무가 12갈래로 수백 년 동안 제단을 지켜 낸 듯 깊이 뿌리내려 자라고 무궁화 한 그루가 성산의 운치를 더한다.

참성단은 한얼님께서 친히 만백성들에게 보은의 근본을 가르치기 위한 정성의 제단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류가 한얼님께 제단을 쌓았던 최초의 제단이며 유일한 실존 제단이므로 그 가치를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제단의 돌 하나하나에 민족의 시련을 굳게 지켜 주신 단군님의 거룩한 자취가 보이는 듯 싶고 조상들의 땀, 눈물의 정성으로 모아진 원도의 소리가 선연히 들리는 듯 싶다.

 1) 태백일사 조대기
    광개토경호태황은 크고 높은 공과 성스러운 덕이 백왕에 뛰어 나시고 온 천하 안에서 열제라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나이 18세에 황제의 위에 오르시니 천악으로 예를 베풀었다. 전쟁에 나아갈 때에는 어아의 노래를 불러서 사기를 진동케 하셨고 마니산에 이르셔서 참성단에 오르시어 친히 삼신께 제사하고 한얼 노래를 부르시었다.

 2) 단군세기
    무어 51년에 임금께서 운사 배달신을 명령하여 삼랑성을 쌓고 제천단을 마니산에 쌓게 하시었다.
그것이 지금의 참성단이다.

 3) 동사 수산집
    마니산은 강과 바다의 모퉁이로서 땅이 조용하고 깨끗하고 깊어서 신령한 자리이다. 때문에 제사 지내는 자리를 만들어서 상제께 제사지낸다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고 땅은 양(陽)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壇)은 반드시 물 가운데 있는 산에 설(設)했고 위가 모지고 아래가 둥근 것은 땅과 하늘의 의미이다.

 4) 고려사 지리지
    마니산에는 참성단이 있었는데 단군님께서 한울에 제사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이 참성단은 보통 제천단으로 불려 오며 근세조선에 있어서도 이곳에서 제천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한다.

 5) 문헌비고
    조선 인조 17년에 단을 수축하고 사당을 지어 제사 지내게 했다. 숙종 26년 5월에 고쳐 쌓고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했는데 거기에 쓰기를 동쪽 땅 수 천리 강토가 고이 지켜 보존 할 만한 중요한 땅이며 강토 수 백리 안에 마니산이 제사 지낼 만한 명산이다. 산 서쪽 가장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들었으니 이른바 참성단이다.

다. 참성단의 성시

 1) 고려때 이강
    제사 드리는 높은 자리는 이나라 중흥(中興)한 후지만
    돌 쌓는 신단(神壇)은 아득한 옛날부터라네
    이 터 저 멀리 다 보이는데
    황홀한 이몸은 구중천상(九重天上)에 있는 것 같네

 2) 홍암 대종사
    참성단에 올라서 한얼님께 경배 올리옵니다.
    한얼님 높으신 신령이 분명히 계시는 듯 하옵니다.
    동서와 남북으로 넓게도 펼쳐진 우리 땅에
    4천 3백년 역사도 길다오

홍암 대종사께서 대교를 중광 한 지 한해를 건너 단기 4244년(서기 1911년)에 신리대전을 발행하고 교회의 규칙을 제정하시고 종사께서 국내에 있는 단군성조의 영적을 순방하실 때 먼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서 제천의식을 거행하시었다. 그 때의 감회를 시로 적으신 것이다.

마니산에서는 단군님 이후부터 각 시대마다 제천행사를 거행하여 왔고 오늘에 이르러 대종교 총본사에서도 매년 개천절에 단의(檀儀)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강화 군수를 제주(祭主)로 하여 성대히 한얼 제사를 올리고 있다. 각 사회단체 또는 각 종교단체에서도 종파를 초월하여 단군님께서 친히 쌓으시고 본을 보이신 성스러운 제단에서 기도와 정성을 끊이지 않고 있다.

Top ↑

(3) 구월산 (삼성사)

     단군께서 백두 천산에 나리셔서 93년 동안 세상 인간을 바로 다스리는 이화세계의 본을 보이시고 사람을 서로 사랑케 하고 유익케 하는 홍익인간의 길을 여신 뒤 경자년 음력 3월 15일에 이르러 문화 구월산에서 한울에 오르시니 뒷날 이 땅에 돌집을 지어 [어천대]라 했다.

단군님께서 이 세상에 계신지가 217년이요 임금의 자리에 계신지가 93년 동안이시다. 그 후 첫째 아드님 부루(扶婁)태자에게 치화를 맡기시고 한울에 오르셨다. [구월산]하면 두 가지 면에서 역사적 의의를 생각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단군께서 한울에 오르신 거룩한 어천(御天)과 둘째는 그 단군님의 성업을 기리는 삼성사, 즉 제사를 지내는 사당(祠堂)이다

가. 삼성사의 역사

 1) 고려지
    문화군에 있는 구월산은 속담에 아사달 산이라 하였는데 아사는 우리말로 아홉과 음이 비슷하며 달은 월(月)과 음이 같은 아사달 산, 곧 구월산이라 하였다. 이조 시대에는 삼성사를 지키기 위하여 관원을 파견하고 매달 1, 15일에 분향(焚香)하고 봄과 가을에는 제향(祭享)을 지내었다.

 2) 관서승람
    구월산 밑 성당리에 소증산이 있으며 환인 환웅 환검을 모신 삼성사가 있다. 삼성당을 평양으로 옮긴 뒤로 비록 국가에서는 제사를 지내 주지 않아도 비를 빌 때나 개이기를 빌 때 현관이 조복을 갖추어 입고 친히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에는 흰떡, 흰밥, 폐백, 과실을 올리고 고을 풍속에 영험이 있다고 하여 백성들은 감히 제사지내지 못했다.

 3) 성종실록
    조선 태종 때에 삼성사를 폐하여 평양 단군 묘에 합쳤더니 황해도 안에 나쁜 병이 번져서 여러 해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삼성당 아래 인가가 많았으나 제사를 폐지한 뒤로부터 나쁜 병이 시작되어 인가가 텅 비게 되었다. 백성들이 모두 이르기를 삼성단을 평양으로 옮겨 설치하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에 나쁜 병이 일기 시작하였다...... 고기(古記)에 단군이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서 신이 되었다고 하니 이는 지금의 황해도 구월산이옵니다. 여기에 그 사당이 있고 또 이보다 먼저 향을 내리고 제사 지냈었사오니 청컨데 백성들의 기원에 따라서 평양 단군대에 예(禮)에 의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서 제사 지내게 하옵소서....

 4) 제왕운기
    환인 환웅 환검의 삼신을 모신 사당이다.

 5) 중광 60년사 (대종교)
    홍암 대종사가 제자들을 데리고 삼성사에 도착하셔서 우거진 풀을 뽑고 당실을 수리하고 동서북 3벽에 떼어서 따로 모셨던 삼신(三神)위비(位卑)를 삼신일체의 진리대로 북쪽 벽에다 중앙에는 환인(桓因)천제(天帝)를, 그 왼편에는 환웅(桓雄)천왕(天王)을, 그 오른편에는 환검(桓儉)인종(人倧)을 모셨다.
본래 삼성사 신위는 처음에 토상(土像)을 모셨다가 뒤에 목상(木像)으로 바꾸었는데 조선 태종 대왕 때에 하륜의 건의 따라 위패(位牌)로 고쳐 모신 것이다. 구월산 대왕과 토지신의 위패는 대종사께서 친히 다시 써서 사당 뜰 위에 모시었다. 그 후 대종사께서 많은 유서와 거룩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남기시고 조천 하신 곳이 바로 구월산 삼성사이다.

 6) 춘관통고
    조선 성종 3년 임진에 삼성당을 고쳐서 삼성사라 하여 환인 환웅 단군 위패를 받들어 모시고 평양 단군 묘의 예에 의하여 해마다 향(香)과 축문(祝文)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7) 문원보불
    조선 정조가 삼성사를 중수하고 제사를 지냈으니 그 글에 말하기를 옛일을 상고해 보니 삼성께서 우리나라에 오시어 천지의 시초를 여시었다. 저 단옥이여 그 빛이 무궁히 열리리로다라 했고 정조 5년에 또 제사를 지냈는데 그 글에 말하기를
아아 ! 장하시도다 단군이시여 ! 맨 먼저 우리나라에 나시었네 덕(德)은 신명에 합하고 운수는 천지의 시초를 여시었네 그 상서로움을 펴시고 밝은 하늘 명령 받으셨네

나. 삼성사의 성시

    동해에 성인이 나시니
    일찍이 듣건데 요와 한때라 했네
    산초에 있는 곳에 사당이 있어
    박달나무에 상서로운 구름이 둘렀네   - 조선 숙종 -

    단군께서 제사 지내는 일 동쪽 땅에 이어졌으니
    소나무 빽빽히 사당을 가리웠네
    삼한의 다섯 도읍 어찌 시끄러운가
    이분이 곧 조선의 시조일세   - 명나라 설정총 -

    삼성사 산에 있는 중이
    바람을 날려 산에서 내려오니
    눈 밑의 푸른 바다 금시에 비어 있네
    황해도 가에 사당에 모시니
    만년 동안 아름다운 기운이 가득하네 - 추 곡 -

  위의 역사와 성시를 통해서 단군님을 모시던 우리 조상들의 거룩한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삼성사의 모습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그리워질 뿐이다.


(4) 평양의 숭령전


    평양의 숭령전은 단군 묘로 불렀는데 조선 영조 5년에 [숭령전]이라 칭하고 전참봉 2인을 두었으며 승지를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 평안도 평양부 성 밖에 있으니 조선 세종 11년에 정전과 동서행랑을 지어서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시고 봄 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 지냈다.
조선 세조 원년에 위패를 고쳐서 {조선시조(朝鮮始祖) 단군지위(檀君之位)}라 하고 5년 경진년에 황세자를 데리고 서쪽으로 거동하여 친히 제사 지냈다. 또한 조선 숙종 5년, 23년에는 가까운 신하들을 보내어 제사 지내고 어제사를 남겼다. 정조 5년에 제사 지냈다.

가. 숭령전의 성시

    엄숙한 단군 사당에 천년 동안 제사를 지냈는데
    티끌이 어리니 벌레가 책상을 쪼았고
    이끼가 끼니 새가 담을 엿보네
    때를 같이 하여 오와 함께 섰고
    터를 열어 도가 홀로 높았네
    봄 가을로 제사 지내는 곳에
    향과 축문으로 꽃다운 창포를 올리네     - 심 준 -


(5) 묘향산 단군굴

    묘향산에 단군 굴이 있는데 단군님께서 임금이 되시기 전에 계시던 곳이라 한다. 단군 굴은 큰산 하나를 차지한 바위 속에 높이가 40척이요, 깊이가 35척이요 넓이가 50척이나 되는 거대한 석굴이다. 돌은 아름다운 화강암으로서 초록빛과 흰빛의 무늬가 갖가지로 둘러 있으며 동쪽에 한줄기의 물줄기가 햇빛같이 번쩍이고 있으며 서쪽 그윽한 돌 벼랑위에 정면 남향으로 세 분의 위패가 모시어져 있는데

단군천신지위(檀君天神之位)는 가운데, 오른편에는 환인천왕지위(桓因天王之位), 왼편에는 환웅천왕지위(桓雄天王之位)라고 써서 굴속에 모시어 졌다 한다.

조금 가까운 곳에 또 하나의 단군 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평양 감사나 영변 부사가 새로 부임하면 반드시 단군 굴에 참배하는 법인데 너무나 올라가기가 어렵고 힘이 들어 보현사의 중들이 인도하기가 꾀가 나서 단군 굴과 흡사한 굴이 바로 가까이 있으므로 단군 굴이라 속여서 참배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단군 굴이라 이르고 지금도 그 곳에 가면 감사나 부사가 참배하고 기념으로 감사 아무개, 부사 아무개라고 새겨 놓은 글이 많이 있다고 한다.



Top ↑